[주일설교, 2020.07.12, 김진영 담임목사] 하나님을 알아감: 엘리의 두 아들과 사무엘
1. 기본 정보
| 항목 | 내용 |
|---|---|
| 일자 | 2020년 7월 12일 (주일) |
| 설교자 | 김진영 담임목사 (서울중앙교회) |
| 설교 제목 | 하나님을 알아감: 엘리의 두 아들과 사무엘 |
| 성경 본문 | 사무엘상 2장 12-21절 |
| 함께 읽은 말씀 | 설교 중 인용: 사무엘상 2:12, 2:17, 2:26 / 이사야 1:3 |
| 영상 | https://youtu.be/-TqcrFuqr6A (설교 약 37분 + 기도) |
작성 근거: 유튜브 영상의 한국어 자동 자막 전체를 읽고 정리했습니다. 자동 자막은 고유명사를 자주 틀리게 받아 적으므로(예: "비너스·빈 와서"→비느하스, "델리 아래·엘리아"→벨리알, "앞 이후"→아비후, "법계"→법궤, "코로나 일구"→코로나19) 성경 본문과 문맥에 맞추어 바로잡았습니다.
설교 제목의 "하나님을 알아감"과, 설교 중 "사무엘상을 묵상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반복해서 하시는 말씀"이라는 표현으로 보아 사무엘상을 이어서 전하는 설교 가운데 한 편입니다. 코로나19가 길어지던 2020년 여름의 설교입니다.
2. 한눈에 보는 설교의 흐름
| 순서 | 내용 |
|---|---|
| ① 임직식의 감동 | 노회의 목사 임직식, 교회의 직분자 임직식 때마다 있는 은혜와 눈물. 홉니와 비느하스도 처음에는 그랬을 것이다. |
| ② 사라진 처음 마음 | 지금 엘리의 아들들에게는 임직식 때의 모습이 온데간데없다. 전문적인 직업, 종교 활동처럼 한다. |
| ③ 예화 | 30년 전 부산의 병원에서 노래를 부르며 시신을 옮기던 사람. 제사장 노릇을 너무 오래 했다. |
| ④ 두 가지 죄 | 정해진 몫이 아니라 갈고리로 마음껏 고기를 가져갔고, 기름을 태우기 전에 고기를 빼앗았다. |
| ⑤ 벨리알의 아들들 | 12절 원문은 "엘리의 아들들은 벨리알의 아들들이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다." |
| ⑥ 경고는 성령의 은혜 | 양심의 가책, 다른 사람의 지적은 100% 성령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다. |
| ⑦ 제사를 멸시함 | 17절. 제사를 하찮게 여기는 것은 하나님을 하찮게 여기는 것이다. |
| ⑧ 회개할 기회 | 심판은 한순간에 오지 않는다. 회개하면 하나님은 뜻을 바꾸신다. 그들은 회개하지 않았다. |
| ⑨ "알지 못했다"의 뜻 | 이사야 1:3. 소와 나귀는 주인을 안다. 알지 못한다는 것은 말을 듣지 않는다는 뜻이다. |
| ⑩ 몰랐을 리 없다 | 나답과 아비후의 일을 아론의 후손은 다 안다. 알고도 순종하지 않았다. |
| ⑪ 받으실 만한 예배 | 형식만 있는 예배.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예배를 드리고 있느냐." |
| ⑫ 실로의 폐허와 사무엘 | 하나님은 예배 장소를 스스로 막으시지만,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사람을 준비하신다. |
| ⑬ 코로나의 뜻 | 하나님 앞에서 내 삶과 예배를 돌아보라는 경고이며 은혜의 방도다. |
| ⑭ 믿음으로 사는 것 | 착하게 사는 것, 죽어서 천당 가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하나님 나라의 열매를 맺는 백성이 되는 것이다. |
| ⑮ 한국 교회 | 선배들의 신앙과 기도의 열심이 사라지고 있다. 지하교회와 가난한 나라의 교회가 그 모습을 보여 준다. |
| ⑯ 결론 | 하루 한 시간씩 기도하고 말씀을 보자. 이 시기를 하나님과 함께 지나자. |
3. 결론 — 이 시기가 지나가기를 기다리지 말고 하나님과 함께 지나자
- 한 시간씩 기도하자. 한 시간씩 말씀을 보자. 설교를 준비하려고, 성경 공부를 준비하려고 읽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싶어서,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싶어서 매일 한 시간씩 성경을 읽는 목사가 얼마나 되겠느냐고 목사님은 물으셨다.
- 교우들과 어르신들을 위한 중보 기도의 제목이 있다. 그러나 지금 말하는 기도는 중보 기도 제목을 가지고 하는 기도가 아니라 이런 기도다. "하나님, 저의 삶을 통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제가 맺어야 할 하나님 나라의 열매가 무엇입니까? 저를 목사와 장로로, 집사와 권사로, 직분자로 부르셨는데, 이 교회의 지체로서 제가 서울중앙교회를 위해 맺어야 할 열매가 무엇입니까? 제가 져야 할 십자가가 무엇입니까? 그것을 가르쳐 주십시오."
- 그 마음으로 골방에 들어가 한 시간씩, 몇 시간씩 기도하는 교인이 우리 교회에 많기를 바란다.
- 코로나19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의 방편으로 반드시 쓰실 것이다. 이 시기가 지나가기를 기다리지 말고, 이 시기를 하나님과 함께 지나도록 매일 하나님 앞에 나와 말씀을 기억하고 기도하기를 진심으로 부탁한다.
- 이런 고백이 있기를 바란다. "하나님, 코로나 이전에 제가 살았던 것과 코로나 이후에 제가 사는 것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이 기간에 하나님 앞에서 겸비하여 제가 이때까지 살아오며 이룬 것이 무엇인지 하나하나 돌아보았습니다. 앞으로는 더 풍성한 열매를 맺기를 원합니다." 그것이 말씀과 기도를 통해 정립되면 좋겠다.
- 하나님 앞에 갔을 때 자랑할 것이 무엇인가? "하나님, 저는 이런 대학을 나왔습니다." 이것이 자랑인가. "하나님, 저는 목사로 살았습니다." 홉니와 비느하스도 제사장으로 살았다. 그것이 우리의 자랑이 아니고 하나님 나라의 열매가 아니다.
- 하나님께서 주님의 교회에 은혜를 주시려고 전 세계적으로 모든 것을 멈추게 하시고 "내 앞에 나와라. 와서 내 말을 듣고 내 뜻이 무엇인지 깨달아라" 하시며 그 은혜를 이 시기에 풍성하게 주신다.
- 우리 가운데 한 사람도 빠짐없이 말씀의 자리, 기도의 자리에 깊이 들어가서 "하나님, 감사합니다. 저에게 하신 말씀이 이 말씀인 줄 믿습니다. 이 세상에서 살아 있는 남은 날 동안 저에게 주신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그 일에 헌신하며 살아가는 은혜를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고백하는, 변화와 기쁨이 있는 코로나19 기간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4. 함께 드린 기도 제목
- 회개 — 홉니와 비느하스를 보면서 드리는 회개의 기도. "하나님, 홉니와 비느하스의 제사를 하나님이 미워하셨고 그들의 태도가 하나님이 받으실 수 없는 것이었음을 기억합니다. 제가 예배자로, 직장에서 예배자로, 이 세상에서 살아갈 때에 하나님을 가볍게 여기고 하나님을 욕되게 한 죄가 있었다면 깨닫게 해 주시고 그 죄를 회개하게 해 주십시오."
- 말씀과 기도의 자리 — "하나님, 말씀과 기도의 자리에 저를 불러 주십시오. 이 땅에 있는 동안 저에게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해 주십시오. 그리고 그 뜻에 열매 맺는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은혜를 주십시오."
마무리 기도: 천하의 범사에 기한이 있고 때가 있으며, 그 기한과 때를 하나님께서 정하시고 결정하시는 줄 믿는다는 고백으로 시작했다. 태어날 때가 있고 하나님께서 정하신 죽을 때가 있듯이, 코로나를 허락하신 때가 있고 멈추실 때가 있음을 믿는다고 했다. 코로나의 때를 정하시고 이 시기를 지나게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기억하며, 말씀과 기도를 통해 이때를 어떻게 살고 어떻게 보내야 할지 깨닫게 해 주시기를 구했다. 남은 삶을 하나님 나라의 풍성한 열매 맺는 백성으로 살게 하시려고 이 시기를 허락하시고 쓰시는 줄 믿으며, 남은 삶을 어떤 열매 맺는 사람으로 헌신해야 할지, 하나님께서 나에게 그리고 우리 교회에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성령 하나님께서 깨닫게 해 주시기를 구했다. 이전에 살았던 삶과 확연하게 구별되어 하나님의 사람으로 쓰임 받는, 준비와 연단의 복된 시기가 되도록 이번 한 주간도 붙잡아 주시기를 구하는 기도였다.
5. 성경 본문 (사무엘상 2:12-21) 줄거리
본문은 개역개정 성경의 내용을 풀어서 요약한 것입니다. 정확한 문장은 성경을 직접 펴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구절 | 내용 |
|---|---|
| 2:12 | 엘리의 아들들은 행실이 나빠 여호와를 알지 못했다. |
| 2:13-14 | 그 제사장들이 백성에게 하던 관습은 이러했다. 누가 제사를 드리고 그 고기를 삶을 때 제사장의 사환이 세 살 갈고리를 손에 들고 와서 냄비나 솥이나 가마에 찔러 넣어, 갈고리에 걸려 나오는 것은 제사장이 모두 자기 것으로 가졌다. 실로에 오는 모든 이스라엘 사람에게 이렇게 했다. |
| 2:15 | 기름을 태우기 전에도 제사장의 사환이 와서 제사 드리는 사람에게 "제사장에게 구워 드릴 고기를 내라. 그분은 삶은 고기를 받지 않으시고 날것을 원하신다"고 했다. |
| 2:16 | 그 사람이 "반드시 먼저 기름을 태운 뒤에 원하는 대로 가져가라"고 하면, 사환은 "아니다, 지금 내놓아라. 그렇지 않으면 억지로 빼앗겠다"고 했다. |
| 2:17 | 이 소년들의 죄가 여호와 앞에 심히 컸다. 그들이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했기 때문이다. |
| 2:18 | 사무엘은 어렸을 때에 세마포 에봇을 입고 여호와 앞에서 섬겼다. |
| 2:19 | 그의 어머니(한나)는 해마다 드리는 제사를 드리러 남편과 함께 올라갈 때마다 작은 겉옷을 지어 사무엘에게 가져다주었다. |
| 2:20 | 엘리가 엘가나와 그 아내를 축복했다. 여호와께 간구하여 얻어 바친 아들을 대신할 다른 자녀를 여호와께서 이 여인을 통해 주시기를 빌었고, 그들은 집으로 돌아갔다. |
| 2:21 | 여호와께서 한나를 돌보셔서 한나가 세 아들과 두 딸을 낳았다. 아이 사무엘은 여호와 앞에서 자랐다. |
6. 설교 내용 정리
6-1. 도입 — 임직식의 감동
일 년에 두 번 모이는 노회가 있다. 노회에는 여러 가지 일이 있지만, 가장 감동적인 순간은 목사 안수식(임직식) 이다.
- 신학교를 졸업하고 개 교회에서 전도사로 견습 기간을 마친 뒤, 교회의 부름을 받아 목사로 임직하는 순서다.
- 그 순서 때마다 임직받는 신임 목사들도 은혜를 받지만, 참석한 모든 노회 회원이 큰 은혜와 감동을 받는다.
- 목사님 세대가 임직받을 때 자주 부른 찬송이 있다. "부름 받아 나선 이 몸 어디든지 가오리다… 아골 골짝 빈 들에도 복음 들고…",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주님의 말씀을 전하는 목회자로 불러 주셔서 감사하다는 고백이다.
- 임직받는 목회자에게도, 그 임직식을 직접 보는 모든 사람에게도 큰 감동과 눈물이 있다. 정말로 자격 없는 나를 구원해 주시고, 특별히 목회자로 불러 주시고, 주님의 교회를 섬길 수 있는 복된 자리를 주신 은혜에 대한 감동이다.
우리 교회에서 임직식을 할 때에도 같은 감동을 느낀다. 장로로, 집사로, 권사로 임직하며, 주님께서 교회에 부르신 직분자로 헌신하고 충성하며 은혜를 의지하며 살아가려는 모습을 볼 때, 하나님께서 참 기뻐하시고 충성된 직분자들을 통해 주님의 교회를 세워 가시리라는 감동이 항상 있다.
6-2. 홉니와 비느하스도 처음에는 그랬을 것이다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는, 목사로 임직받고 장로와 집사와 권사로 임직받는 것과 같거나 그보다 더 큰 감동이 있었을 것이다.
- 태어났는데 하나님의 택한 백성, 이스라엘 백성으로 태어났다.
- 그 가운데서도 레위 지파로 태어났다. 하나님께서 레위 지파에게 주신 특별한 은혜는 평생 하나님의 성전에서 하나님을 섬기며 말씀을 배우고 제사를 섬기며 살아가는 것이다.
- 레위 지파일 뿐 아니라 아론의 후손으로 태어났다. 성전의 여러 가지 일 가운데 가장 핵심이 되는 일, 곧 제사를 드리는 제사장으로 살아가는 은혜를 하나님께서 아론의 자손에게 주셨다.
홉니와 비느하스가 나이가 되어, 서른이 되어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며 일을 시작했을 때는, 우리가 처음 직분자가 되고 목사와 장로와 집사와 권사가 되었을 때 은혜에 감사하며 드렸던 것 이상으로 두렵고 떨리는 마음, 감사하고 기뻐하는 마음으로 제사를 드렸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는지는 모르지만, 지금 사무엘상 2장에 나타난 엘리의 아들들의 모습은 하나님께서 은혜로 제사장으로, 직분자로 부르신 그 은혜에 감사하며 섬기는 모습에서 훨씬 떨어져 있다. 임직식 때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거의 전문적인 직업처럼, 종교 활동을 하는 것처럼 하고 있다.
6-3. 예화 — 노래를 부르며 시신을 옮기던 사람
목사님은 교회에 장례가 있어 장례식에 갈 때마다 장례를 맡은 상조회 분들의 태도를 보고 놀랄 때가 있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30년 전의 기억을 꺼내셨다.
- 30년 전 부산의 큰 대형 병원 장례식장에서 인상 깊게 본 장면이 있다. 지금과 같은 장례 문화가 전혀 없던 때다. 병원에서 사람이 죽으면 시신을 염하는 곳으로 옮기는 옛날식 장례였고, 시신을 운반하는 사람이 늘 있었다.
- 그날도 한 사람이 죽어 긴 카트에 시신을 눕히고 흰 천을 덮었다. 그 사람이 카트를 끌고 안치실로 옮기는데, 그래서는 안 되는데, 매일 그 일을 하다 보니 카트를 빠른 속도로 끌면서 노래를 부르며 갔다. 그 뒤로 남편을 잃은 아내와 가족들이 눈물을 흘리며 따라가고 있었다.
- 요즘 장례식장에 가면 그분들도 전문적으로 매일 하루 종일 그 일을 할 텐데, 장례에 임하는 자세를 볼 때 감동을 받는다. 가족보다 더 고인에 대해 마음과 정성을 쏟는 모습을 보면 한편으로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홉니와 비느하스는 제사장 노릇을 너무 오래 했다. 하나님의 은혜가 떨어진 가운데 직분자로 살아가는 일이 오래되었다. 그래서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하나님을 의식하며 드리지 않는다. 죽은 사람의 시신을 아무 감정 없이 "이것도 저쪽으로 옮겨야겠구나" 하며, 표현 그대로 슬리퍼를 끌고 웃으며 노래하며 옮기는 사람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합당하지 않은 제사를 드리고 있다.
6-4. 본문이 지적하는 두 가지 죄
① 정해진 몫이 아니라 원하는 대로 고기를 가져갔다
- 화목 제물을 드릴 때 제사장에게 주라고 한 몫이 있다. 레위기와 신명기에서 하나님이 제사장에게 주라고 하신 부위는 가슴과 다리다. 그것을 가져가면 된다.
-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제사를 드린 고기를 삶을 때 삼지창을 들고 와서 마음껏 찌른다.
- 사환을 보냈을 수도 있고 제사장 가운데 한 명을 보냈을 수도 있다. 어떤 형태든 죄질은 똑같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법을 따르지 않고 자기가 원하는 대로 고기를 가져간 것이다.
- 백성들이 그 정도까지는 참고 용인한 것 같다.
② 기름을 태우기 전에 고기를 빼앗았다
- 조금 더 심각한 죄다. 기름은 하나님께 다 태우게 되어 있다. 제사를 드릴 때 고기의 기름은 다 태워서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향기로운 제물이 되게 하라고 하셨다.
- 그런데 기름을 다 태우기 전에, 기름이 있는 고기를 먹고 싶어서 고기를 빼앗아 가는 일이 벌어졌다.
- 백성들이 경고했다. "그렇게 하면 안 되지 않습니까. 이건 좀 심하지 않습니까.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이런 식으로 하면 안 되지 않습니까."
- 홉니와 비느하스는 하나님께서 백성들을 통해 하시는 그 경고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6-5. "엘리의 아들들은 벨리알의 아들들이었다"
12절 "엘리의 아들들은 행실이 나빠"를 히브리어 원문 그대로 따라 읽으면 이렇다. "엘리의 아들들은 벨리알의 아들들이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다."
가장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지켜야 할 제사장인데, 그 제사의 직분을 수행하고 있는 홉니와 비느하스를 향해 하나님께서는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을 섬기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벨리알, 곧 마귀를 섬기고 마귀의 길을 따라가는 마귀의 자식이었다"고 말씀하신다.
6-6. 양심의 가책과 다른 사람의 지적은 성령께서 주시는 은혜다
우리가 예배를 드리거나 어디서든 신앙생활을 할 때 양심의 가책이 올 때가 있다.
- "내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인데 이 부분은 이렇게 부정하게 하면 안 되지. 뇌물을 받아서는 안 되지."
- "내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인데 직장에서 이런 식으로 하면 안 되지."
- "내가 사람을 대할 때 이렇게 하면 안 되지."
- 혹은 어떤 사람에게서 "예수 믿는 사람이 그렇게 하면 됩니까"라는 말을 들을 때가 있다.
신앙 양심에 걸리거나 다른 사람을 통해 경고를 받을 때, 그것은 100% 성령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시는 은혜다. 나도 모르는 죄, 내가 의식하지 않고 습관적으로 하는 죄 된 행동을 지적하시는 것이고, "그런 식으로 제사를 드리면 안 된다. 그런 식으로 믿음 생활 하면 안 된다"고 깨닫게 해 주시는 분은 성령님이시다.
홉니와 비느하스에게 하나님께서 백성들을 통해 경고하셨다. 그럼에도 그들은 하나님께 마땅히 드려야 할 제사를 드리지 않았다.
6-7. 하나님의 마음 —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함이었더라" (17절)
그러한 홉니와 비느하스를 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17절에 나타나 있다. "이 소년들의 죄가 여호와 앞에 심히 큼은 그들이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함이었더라." 여기에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감정이 들어 있다.
- 홉니와 비느하스가 드리는 제사, 그리고 주일마다 우리가 드리는 예배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마음으로 판단하신다.
- 홉니와 비느하스의 제사를 보시고 하나님께서 느끼신 것은 "이 직분자들, 이 제사장들이 나에게 드리는 제사를 멸시하는구나"였다.
- 멸시한다는 말은 하찮게 여기고, 가볍게 여기고, 경멸한다는 뜻이다.
-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멸시한다는 말은, 괄호를 치고 읽으면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하찮은 존재로, 가볍게 여기니까 그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도 가볍고 하찮은 것으로 여기는 것이다.
6-8. 하나님은 회개할 기회를 주신다 — 그러나 그들은 회개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심판은 한순간에 오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회개할 기회를 주신다. 백성들을 통해 경고하시고, 하나님의 사람을 보내어 또 경고하시고, 사무엘을 통해서도 계속 경고하신다.
경고를 들을 때의 두 가지 반응 — 목사님은 믿음 생활 할 때 이것을 조심해야 한다고 하셨다.
| 사람 | "하나님께서 나를 죽이기로 하셨다"는 말을 들었을 때 |
|---|---|
| 악한 사람 | "하나님께서 죽이기로 하셨으니 죽을 수밖에 없군. 할 수 없군." 그렇게 하고 회개하지 않는다. |
| 정말로 믿고 회개하는 사람 | 그 말씀을 들고 골방에 들어간다. "하나님, 잘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죽이기로 확정하신 것을 저도 이해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제가 말씀을 듣고 회개합니다. 회개하오니 저를 이 죄에서 건져 주시고 살려 주십시오." |
- 그러면 놀랍게도 하나님은 뜻을 바꾸시는 분이다. 성경을 쭉 읽어 보라고 하셨다.
- 하나님께서 "내가 이렇게 하겠다"고 말씀하신 다음에도, 그 말을 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하나님 앞에 겸비하고 그 죄에서 벗어나 용서를 구하면, 하나님께서는 체면이고 뭐고 다 없이 "없던 것으로 할게. 내가 말 바꿀 거야" 하신다. 회개의 은혜를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다.
- 홉니와 비느하스에게도 하나님은 회개할 기회를 주셨다. 그러나 그들은 그 기회에 회개하지 않았다. 오히려 경고를 듣고도 그 길로 계속 가서 하나님의 심판과 진노의 자리로 스스로 빠져 들어갔다.
6-9. "하나님을 알지 못했다"는 말의 뜻 — 소와 나귀 (이사야 1:3)
왜 엘리의 아들들은 하나님을 멸시하며 그렇게 살았는가? 12절은 그 이유를 "하나님을 알지 못했다" 고 기록한다. 제사장이면 하나님을 제일 잘 알 사람이다. 그래서 궁금하다. 하나님을 알지 못했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교회가 매일 큐티로 묵상하고 있는 이사야서 1장이 이 말을 정확하게 설명한다. 이사야 1장 3절이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그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한다.
-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것을 소나 나귀가 주인을 아는 것과 대비하여 설명한다.
- 소가 주인을 안다는 것은 무슨 말인가. 농사지을 때 쟁기질하며 주인이 "이랴, 가자" 하면 소가 앞으로 간다. "멈춰라" 하면 멈춘다. 그것이 주인을 아는 것이다.
- 주인이 가자고 하는데 안 간다. 가기 싫다는 것이다. 일하라고 해도 말을 듣지 않는다. 그러면 하는 말이 "이게 주인 알기를 뭘로 아느냐. 너는 주인도 없느냐"이다. 아주 자연스러운 표현이다.
- 주인을 알지 못한다는 것은 주인의 말을 듣지 않는 것이다.
홉니와 비느하스가 하나님을 알지 못했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다는 말씀이다.
6-10. 몰라서 그랬다면 죄가 아닌가 — 나답과 아비후
목사님은 물으셨다. 엘리의 두 아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의 법을 몰라서 이렇게 악한 일을 했다면 죄가 안 되는가? "이렇게 제사를 드리고, 고기는 이 부분을 가져가고, 기름은 다 태우라"고 하신 것을 제사장이 모르고 그 일을 했다면 죄가 아닌가?
- 아론의 후손들은 하나님의 법을 모르고 하는 것이 심각한 죄라는 것을 태어나면서부터 알고 있다.
- 아론이 대제사장으로 임직하던 그 시기에, 아론의 두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하나님께서 정하지 않으신 방식으로 제사드리려고 불을 들고 오다가 죽었다. 그 끔찍한 일을 아론의 후손들은 다 알고 있다.
- 예배를 드릴 때, 제사를 드릴 때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방식, 하나님이 명령하신 방식으로 드려야 한다는 것을 다 알고 있다. 그것을 몰랐다면 그것 자체가 제사장으로서는 죄다.
- 엘리의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알고도 그렇게 한 것이 분명하다. 알았는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이렇게 표현하신다. "나를 경멸하는구나. 나를 하찮게 여기는구나. 예배와 제사를 취급하는 너희의 태도를 보니, 너희 마음에는 하나님을 경멸하는 마음이 있고 종교적인 형식으로만 예배를 드리는구나. 나에게 예배할 마음이 없구나."
6-11.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예배를 드리고 있느냐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
- 오늘 하나님 앞에 나가서 어떤 마음으로 예배를 드릴까.
- 어떤 마음으로 찬송을 드리며, 어떤 마음으로 주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어떻게 순종하며 살아갈까.
- 헌상(헌금)을 드릴 때, 내가 하나님 앞에 헌상을 드린다는 것이 어떻게 드려야 하는 것인가.
- 이런 것을 생각하면서 하나님 앞에 드릴 때 하나님은 제사와 예배를 받으신다.
그런데 하나님 보시기에 그들은 형식적으로 제사장 노릇을 할 뿐, 하나님을 향한 참 예배와 제사가 없다.
설교자로서의 고민
목사님은 설교자로서 말씀을 전할 때의 어려움을 털어놓으셨다.
- 여러 어려움이 있지만 결국 가장 힘든 것은 "하나님께서 교회에 주시는 말씀이 무엇일까"를 찾고 씨름하는 일이다.
- 격려와 위로와 힘이 되는 말씀을 함께 나누기를 원하고, 하나님께서도 말씀을 통해 그것을 주신다.
- 그런데 사무엘상을 묵상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반복해서 하시는 말씀이 있다.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예배를 드리면서 살아왔느냐?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예배를 드리고 있느냐?"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통해 계속 이것을 스스로 묻게 하신다.
가장 올바른 예배를 드려야 할 제사장들이 하나님께서 받으실 수 없는 제사를 드리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참으시다가, 참으시다가, 안 되면 심판하신다.
6-12. 하나님이 스스로 예배의 자리를 막으신다 — 실로의 성막
-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 성전을 스스로 파괴하기로 작정하시고 아예 성전을 파괴하여 없애 버리셨다. 성전에서 드리는 제사와 예배를 하나님께서 정말로 싫어하셨다. 이사야를 통해 계속 그 말씀을 하셨다.
- 그 성전의 파괴와 똑같은 일이 사사 시대에 한 번 벌어지는데, 바로 엘리의 시대다.
-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지으라고 하셔서 모세를 통해 지은 성막이 실로에 있었다. 실로에서 행해지는 모든 제사를 하나님은 하나님을 경멸하는 제사로 느끼셨다.
- 그리고 경고하셨다. "내가 받을 만한 제사를 드려라. 그렇지 않으면 내가 반드시 심판할 것이다." 계속 말씀하셨지만 듣지 않았다.
-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전쟁을 통해 법궤도 빼앗기게 하시고, 실로의 성막도 폐허가 되게 하셨다.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리, 예배하는 장소를 하나님께서 스스로 막아 버리셨다.
- 언제까지인가. 다윗이 그렇게 열심히 준비하고 솔로몬이 성전을 지을 때까지다.
6-13.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사람을 준비하신다 — 사무엘
그런 가운데 우리의 주목을 끄는 것이 있다. 그런 와중에서도 하나님께서는 그루터기를 남겨 놓으시듯이 하나님의 사람을 준비하신다.
- 하나님께 진심으로 예배하며 하나님을 정말로 아는 사람.
-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이면 토씨 하나 빠뜨리지 않고 그대로 전하는 사람.
-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순종하며 살아가는 사람.
이런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의 백성을 하나님께서는 어느 시대든지 반드시 준비하신다. 이런 와중에도 아이 사무엘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아는 사람으로 자라는 은혜를 받는다. "아이 사무엘이 점점 자라매 여호와와 사람들에게 은총을 더욱 받더라." 정말로 하나님이 쓰실 만한 교회, 그러한 직분자들을 하나님께서는 일으키고 계신다.
6-14. 하나님이 왜 우리에게 코로나를 주셨는가
- 솔로몬의 경고대로, 하나님께서 전쟁과 전염병과 기근을 주시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나의 삶을 돌아보라고 하시는 경고의 말씀이다.
- 코로나가 왜 발생했는지, 과학적으로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대책이 어떻게 될지 우리는 알 수 없고 빨리 끝나기를 기도할 뿐이다.
- 그러나 하나님께서 전염병을 통해, 코로나19를 통해 주님의 교회와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확실한 말씀
- 하나님 앞에서 이때까지 내가 어떻게 예배를 드렸고, 어떤 예배자로 살아왔으며, 어떤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왔는지를 겸손하게, 겸비하게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라.
- 돌이켜야 할 죄, 제거해야 할 죄, 내 안에 깊이 들어와 있는 악한 것이 무엇인지 말씀과 기도를 통해 깨닫고 그 죄에서 떠나라.
- 말씀과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나에게 하시는 말씀이 무엇인지 분별하고, 코로나 이전에 살아온 예배의 삶과 코로나 이후에 살아갈 예배의 삶이 확연하게 구별되도록 하나님 앞에 나와 기도하며 은혜를 구하라.
이를 위해 이 시기를 주신 것은 분명하고 확실하다.
"왜 이 코로나의 기간이 이렇게 깁니까?"
- 우리의 죄가, 하나님 앞에서 돌아보아야 할 회개의 시간이 크고 길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 시기를 길게 가져가시는 것이 아닌가 생각할 수밖에 없다.
- 하나님께서 뜻하시면 우리가 생명을 다하는 날까지 이 코로나와 같은 상황을 끌고 가실 수도 있다.
-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 믿는 것이 있다. 하나님께서 이것을 허락하시고 이 시기를 주신 것은 우리를 괴롭게 하기 위함이 아니다. 우리를 하나님 앞에서 더 믿음으로 살아가도록, 하나님의 구별된 백성으로 살아가도록 하시려는 은혜의 방도로 이 시기를 쓰고 계신다는 것을 분명하게 믿는다.
- 그러므로 이 기간 동안 하나님 앞에서 살아온 삶을 돌아보고, 남은 삶을 이전과 확연하게 구별되는 하나님 나라의 열매를 맺으며 살 수 있도록 기도하며 은혜를 구하는 시간이 되도록 하루하루 애쓰기를 바란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의 시간
- 분주하고 바쁘게 살던 것을 하나님께서 막으신 것이다.
- 일주일에 비는 날이 없었는데, 요즘은 약속이 별로 없을 정도로 모든 날이 비어 있다.
- 하나님께서 그것을 통해 주시는 은혜가 있다. "나에게 와라. 나에게 와서 네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기도해라."
처음 마음을 돌아보라
- 처음 목사로, 처음 장로로, 처음 집사와 권사로 부름받았을 때, 처음 예수님을 믿었을 때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마음이 있었다. "주님의 교회를 위하여 부족한 저를 불러 주셨는데, 분골쇄신하여 아골 골짝 빈 들에도 어디든지 가겠습니다."
- 홉니와 비느하스도 그런 마음으로 제사장 일을 시작했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엔가 은혜가 다 떨어졌다. 그냥 직업으로 할 뿐이다.
-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하는 제사장 일을 보시고 "이들이 나를 경멸하고 있다"는 것을 아시고 경고하신다.
- "내가 이때까지 어떤 믿음의 열매를 맺고 살아왔을까." 그것을 돌아볼 기회와 은혜를 우리에게 주셨다. 정말로 감사할 일이다.
6-15. 예수님을 믿고 믿음으로 산다는 것 — 하나님 나라의 열매
목사님은 물으셨다. 구체적으로 예수님을 믿고 믿음으로 사는 것은 무엇인가? 예수님께서 전하신 것이 무엇인가?
한 집사님의 말
주중 성경 공부 때 모태신앙으로 교회에서 자란 한 집사님이 기억에 남는 말을 했다.
- 성경을 구체적으로 배우고, 다른 집사님들과 목회자들과 함께 성경 말씀을 배우기 전에는 "신앙생활을 잘하는 것은 착하게 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가능한 한 착하게 살려고 애썼다.
- 성경을 공부하기 전에는 "교회 다니고 예수님을 믿으면 죽어서 천당에 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목사님은 말씀하셨다. 그것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을 바르게 알고, 그 하나님을 알고 순종하는 성숙한 믿음이 전혀 아니다.
알아야 할 질문들
- 예수님께서는 왜 나를 구원하셨는가?
- 예수님께서 왜 나를 주님의 교회의 지체로 부르셨는가?
- 예수님께서 나를 통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
- 하나님께서 어떤 제사를 드리라고 말씀하셨는가?
홉니와 비느하스는 모르거나, 아는데도 하지 않았다. 예수님께서 나를 구원하셔서 교회로 부르시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게 하셨다. 왜 구원하셨는지 알아야 한다.
예수님께서 전하신 것은 하나님의 나라다
- 예수님께서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를 향해 하신 말씀이 있다. "이 세상을 살아갈 때 하나님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되어라. 들포도를 맺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으니 그 은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라."
- 교회가 묵상하고 있는 이사야서에서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이 이것이다. "내가 내 포도원을 위해서 안 한 것이 무엇이냐. 내가 하나라도 놓치고 안 한 것이 있으면 말해 보아라. 나는 다 하지 않았느냐. 좋은 포도를 맺을 수밖에 없는 은혜를 너희에게 다 주지 않았느냐."
- 하나님께서 교회와 백성에게 기대하시는 것은 그 은혜에 합당한 좋은 열매를 맺는 교회, 좋은 열매를 맺으며 살아가는 신자다.
- 그런데 무슨 열매를 맺었는가. 홉니와 비느하스처럼, 그런 은혜를 받지 않고도 맺을 수 있는 들포도를 맺었다.
- 하나님께서는 그런 교회, 그런 신자를 향해 경고하신다. "네가 맺어야 할 하나님 나라의 열매를 맺어라. 네가 맺어야 할 교회의 열매를 맺어라." 거듭 말씀하시는데, 그 열매는 맺지 않고 습관적으로 예배를 드리고 종교 생활을 하는 것이 우리에게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6-16. 한국 교회의 모습 — 사라진 선배들의 신앙
- 한국 교회 초창기, 1905년과 1907년 대부흥 때의 기록을 보라고 하셨다.
- 지금 미국과 유럽의 교회에는 홉니와 비느하스처럼 하나님 마음에 합하지 않는 예배를 드리며 그렇게 신앙생활 하는 교인이 많다. 교회가 약하면 사회가 도덕적으로 타락하게 되어 있다.
- 그런데 놀랍게도, 홉니와 비느하스와 같은 제사장들이 무너질 때 하나님께서는 사무엘과 같은, 하나님 마음에 합한 교회를 일으키신다.
지금 복음을 붙들고 사는 교회들
- 선교사님들이나 교회를 많이 살펴보는 분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지금 하나님 앞에서 복음을 붙들고 하나님의 말씀에 모든 것을 내어놓고 신앙생활 하는 교회는 이란의 지하교회, 북한의 지하교회, 그리고 미미하게 보이는 가난한 나라에서 부흥하고 있는 남미와 동남아의 교회들이다. (목사님은 이에 관한 책을 신청해서 기다리는 중이라고 하셨다.)
- 그 교회 교인들의 모습은 우리 한국 교회,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에 있었던 살아 있는 교회, 정말로 하나님의 말씀에 열매 맺는 교회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 네다섯 살 된 어린아이가 하루에 몇 시간씩 기도한다.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 일주일간 금식하며 기도한다. 우리 가운데 그렇게 하는 교회는 없다.
한국 교회
- 하나님의 은혜에 감동되어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 모든 구박과 불이익을 감수하며 살았던 선배들의 신앙이 이제는 교회에 없다.
- 교회에 기도하는 분위기, 기도의 열심이 많이 사라졌다. 한국 교회의 기도는 점점 없어지고 있다.
왜 그들은 그렇게 기도하는가
- 유치원생, 초등학생 어린아이가 무엇 하려고 몇 시간씩 기도하는가? 아무 문제가 없는 사람이 왜 일주일간 금식하며 기도하는가?
- 성령 하나님께서 그런 애타는 마음을 주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애타는 마음이다.
- "하나님, 제가 정말로 열매 맺는 백성으로 살아왔습니까? 제가 이때까지 맺은 열매가 하나님 나라에서 헤아려질 만한 열매입니까?" 하나님 앞에서 이렇게 회개하며 기도하는 시간을 우리에게 주신 것이다.
성경 읽기에 대한 기대
목사님은 "일 년에 500독을 합시다"라고 하시며, 우리 교회가 해낼 줄로 믿고 별로 염려하지 않는다고 하셨다. 천 독을 하려다가 줄였지만 500독은 능히 할 것이라는 확실한 믿음이 있다고 하셨다. (이 부분은 자막이 고르지 않아 숫자와 표현이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 이어지는 결론의 권면은 3장에 정리했다.
7. 참고자료
설교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덧붙인 배경 설명입니다. 설교에서 직접 말씀하신 내용이 아닌 부분은 성경 본문과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성경 연구 자료에 근거했습니다. 연대는 학자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어 "약"으로 표기했습니다.
7-1. 역사 배경
사사 시대의 끝자락
- 본문은 여호수아가 죽은 뒤 왕이 세워지기 전, 사사들이 다스리던 시대의 마지막 무렵(주전 약 11세기)이다. 사사기는 이 시대를 "그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삿 21:25)고 요약한다.
- 엘리는 실로 성막의 제사장이면서 40년 동안 이스라엘의 사사였다(삼상 4:18). 사무엘은 마지막 사사이자 선지자로서 사울과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왕정 시대를 열었다.
엘리 집안에 주어진 경고와 그 결말
| 순서 | 사건 | 성경 |
|---|---|---|
| ① | 백성이 "먼저 기름을 태운 뒤에 가져가라"고 말했으나 듣지 않음 | 삼상 2:16 |
| ② | 아버지 엘리가 꾸짖었으나 듣지 않음. "여호와께서 그들을 죽이기로 뜻하셨음이더라" | 삼상 2:22-25 |
| ③ |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하나님의 사람'이 엘리에게 와서 심판을 예고함. 두 아들이 한날에 죽을 것이라는 표징 | 삼상 2:27-36 |
| ④ | 어린 사무엘에게 주신 말씀으로 다시 심판을 확정하심 | 삼상 3:11-18 |
| ⑤ | 블레셋과 싸운 아벡 전투에서 법궤를 빼앗기고 홉니와 비느하스가 같은 날 죽음. 소식을 들은 엘리도 죽음 | 삼상 4:1-18 |
설교에서 "백성들을 통해, 하나님의 사람을 보내어, 사무엘을 통해 계속 경고하신다"고 하신 것과 "하나님께서 죽이기로 하셨다"는 표현이 위 ①~④에 해당한다.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신 성경의 사례 — 설교의 "성경을 쭉 읽어 보라"와 관련하여
- 니느웨: 요나가 40일 뒤의 멸망을 선포했으나 왕과 백성이 회개하자 하나님이 재앙을 내리지 않으셨다(욘 3:4-10).
- 히스기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는 말씀을 듣고 벽을 향해 통곡하며 기도하자 15년을 더하셨다(왕하 20:1-6).
- 원리: "내가 말한 그 민족이 그의 악에서 돌이키면 내가 그에게 내리기로 생각하였던 재앙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겠고"(렘 18:7-8).
실로 성막의 최후와 예루살렘 성전
- 사무엘상은 법궤를 빼앗긴 일(4장)까지만 기록하고 실로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직접 말하지 않는다. 훗날 예레미야가 "내가 처음으로 내 이름을 둔 처소 실로에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악에 대하여 내가 어떻게 행하였는지를 보라"(렘 7:12-14, 26:6)고 했고, 시편도 "실로의 성막 곧 사람 가운데 세우신 장막을 떠나시고"(시 78:60-61)라고 노래한다. 설교의 "실로의 성막이 폐허가 되게 하셨다"는 말씀의 근거다.
- 그 뒤 법궤는 블레셋에서 돌아와 기럇여아림에 오래 머물렀고(삼상 7:1-2), 다윗이 예루살렘으로 옮겼다(삼하 6장). 성막과 제단은 놉(삼상 21장)과 기브온(대하 1:3-6)에 있었다. 솔로몬이 성전을 지어 봉헌하면서 법궤와 예배 처소가 다시 한곳에 모였다(왕상 8장).
- 예루살렘 성전은 주전 586년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게 파괴되었다(왕하 25:8-9). 이사야는 그보다 앞선 시대(주전 8세기)에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슨 유익이 있느냐…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사 1:11-15)는 말씀을 전했다.
나답과 아비후
아론과 아들들의 제사장 위임식(레 8-9장) 직후, 아론의 맏아들 나답과 둘째 아비후가 "여호와께서 명령하시지 아니하신 다른 불"을 담아 분향하다가 여호와 앞에서 나온 불에 죽었다(레 10:1-2). 그때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 "나는 나를 가까이하는 자 중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겠다"(레 10:3)이다.
"솔로몬의 경고" — 전쟁과 전염병과 기근
솔로몬의 성전 봉헌 기도에 기근, 전염병, 적국의 침략이 있을 때 백성이 성전을 향해 기도하면 들어 달라는 간구가 있다(왕상 8:33-40, 대하 6:24-31). 그 응답으로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혹 내가 하늘을 닫고 비를 내리지 아니하거나… 혹 전염병이 내 백성 가운데에 유행하게 할 때에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대하 7:13-14).
코로나19와 2020년 여름
코로나19(COVID-19)는 2019년 말 처음 보고된 새 감염병이다. 우리나라에서는 2020년 1월에 첫 확진자가 나왔고, 3월에 세계보건기구(WHO)가 세계적 대유행을 선언했다. 이 설교가 있던 2020년 7월은 모임과 약속이 크게 줄고 교회의 예배와 모임도 제한을 받던 때다. 설교에서 "모든 날이 비어 있다", "전 세계적으로 모든 것을 멈추게 하셨다"고 하신 배경이다.
한국 교회 초기의 부흥
1903년 원산에서 선교사 하디(R. A. Hardie)의 회개로 시작된 부흥의 흐름이 이어져, 1907년 1월 평양 장대현교회의 사경회(성경을 집중해서 배우는 집회)에서 큰 회개 운동이 일어났다. 이것을 흔히 '평양 대부흥'이라고 부른다. 공개적인 죄의 고백과 새벽기도, 통성기도, 성경 공부의 열심이 한국 교회의 특징으로 자리 잡은 때로 평가된다.
7-2. 지리
| 지명 | 설명 |
|---|---|
| 실로 | 에브라임 산지에 있던 성읍으로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약 30km 떨어져 있다. 여호수아 때 회막을 세운 곳이며(수 18:1), 사사 시대 내내 이스라엘의 예배 중심지였다. 한나가 기도하고 사무엘이 자란 곳이다. |
| 라마(라마다임소빔) | 사무엘의 부모 엘가나와 한나의 집이 있던 곳(삼상 1:1, 2:11). 해마다 여기서 실로로 올라가 제사를 드렸다. |
| 아벡·에벤에셀 | 블레셋과 이스라엘이 싸운 곳. 이 전투에서 법궤를 빼앗겼다(삼상 4:1-11). |
| 예루살렘 | 다윗이 수도로 삼고 솔로몬이 성전을 지은 곳. 실로 이후 예배의 중심이 된다. |
| 아골 골짜기 | 설교에 인용된 찬송 가사의 "아골 골짝". 여리고 근처의 골짜기로, 아간이 죄 때문에 처형된 곳이다(수 7:24-26). '괴로움의 골짜기'라는 뜻이며, 찬송에서는 아무도 가려 하지 않는 험한 사역지를 뜻한다. 호세아는 하나님이 "아골 골짜기로 소망의 문을 삼아 주시겠다"고 전했다(호 2:15). |
| 평양·원산 | 한국 교회 초기 부흥이 일어난 곳. |
7-3. 인물
| 인물 | 설명 |
|---|---|
| 엘리 | 실로 성막의 제사장이자 사사. 아들들의 죄를 알고 말로 꾸짖었으나 막지는 못했다. 하나님은 "네 아들들을 나보다 더 중히 여긴다"(삼상 2:29)고 책망하셨다. 아론의 넷째 아들 이다말의 계통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
| 홉니와 비느하스 | 엘리의 두 아들로 실로의 제사장(삼상 1:3). 제물을 가로챘을 뿐 아니라 회막 문에서 수종 드는 여인들과 동침하는 죄도 지었다(삼상 2:22). 아벡 전투에서 같은 날 죽었다. 이 비느하스는 모세 시대에 하나님을 위해 열심을 낸 아론의 손자 비느하스(민 25:7-13)와는 다른 사람이다. |
| 사무엘 | 한나가 기도하여 얻고 하나님께 바친 아들. 젖을 뗀 뒤부터 실로에서 엘리 곁에 머물며 자랐다. 본문은 엘리의 아들들의 타락과 사무엘의 성장을 번갈아 보여 준다(2:11, 2:18, 2:21, 2:26, 3:1, 3:19). 설교에서 인용하신 "아이 사무엘이 점점 자라매 여호와와 사람들에게 은총을 더욱 받더라"는 2장 26절이다. |
| 한나와 엘가나 | 사무엘의 부모. 한나는 아이가 없어 괴로워하다가 실로에서 기도하여 사무엘을 얻었고, 서원한 대로 하나님께 드렸다(삼상 1장). |
| 아론 | 모세의 형이자 이스라엘의 첫 대제사장. 제사장직은 아론의 자손에게만 주어졌다(출 28:1, 민 18:1-7). |
| 나답과 아비후 | 아론의 맏아들과 둘째 아들. 위 7-1 참조. |
| 이사야 | 주전 8세기 남유다의 선지자. 설교에서 인용된 소와 나귀의 말씀(1:3)과 포도원의 노래(5:1-7)를 전했다. |
| 솔로몬 | 다윗의 아들로 예루살렘 성전을 지은 왕. |
7-4. 문화
화목제와 제사장의 몫
- 화목제는 제물의 기름을 제단에서 태워 하나님께 드리고, 일부를 제사장에게 주고, 나머지를 제사 드린 사람과 가족이 함께 먹는 제사다. 하나님과 사람이 함께 누리는 식사의 성격이 있다.
- 레위기는 화목제물에서 가슴과 오른쪽 뒷다리를 제사장의 몫으로 정했다(레 7:28-34). 신명기는 소나 양으로 제사를 드릴 때 앞다리와 두 볼과 위를 제사장에게 주라고 한다(신 18:3). 설교에서 "레위기와 신명기에… 가슴과 다리"라고 하신 것은 이 규정들을 가리키며, 두 책이 열거하는 부위에는 위와 같은 차이가 있다.
- 어느 쪽이든 요점은 같다. 제사장의 몫은 하나님이 정해 주신 것이고, 홉니와 비느하스는 그 정하신 것을 버리고 갈고리에 걸리는 대로 가져갔다.
기름은 여호와의 것
"모든 기름은 여호와의 것이라"(레 3:16-17). 제물의 내장을 덮은 기름과 콩팥 등은 가장 좋은 부분으로 여겨져 반드시 제단에서 먼저 태워 하나님께 드렸다. 기름을 태우기 전에 날고기를 달라고 한 것은 하나님의 몫보다 자기 몫을 먼저 챙긴 것이다.
세 살 갈고리
끝이 세 갈래로 갈라진 고기 집게다. 설교에서는 "삼지창"이라고 하셨다.
제사장이 일을 시작하는 나이
설교에서 "서른이 되어서"라고 하신 것은 회막에서 봉사할 레위인을 30세부터 50세까지로 계수한 규정(민 4:3)에 따른 것이다. 다만 민수기 8:24는 25세, 역대상 23:24는 20세로 적고 있어 시대와 직무에 따라 차이가 있었던 것으로 본다.
세마포 에봇
에봇은 제사장이 입는 조끼 모양의 겉옷이다. 대제사장의 에봇은 금실과 보석으로 꾸민 것이었고, 일반 제사장과 성소에서 섬기는 사람은 베로 짠 단순한 에봇을 입었다. 어린 사무엘이 이것을 입었다는 것은 어릴 때부터 성소에서 섬겼다는 뜻이다.
노회와 임직식
| 용어 | 풀이 |
|---|---|
| 노회(老會) | 장로교에서 한 지역 교회들의 목사와 각 교회 대표 장로로 구성되는 회의. 목사를 세우고 지역 교회를 돌보는 권한이 있다. 보통 봄과 가을에 정기 모임을 연다. |
| 안수(按手) |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하여 직분을 맡기는 예식. |
| 임직(任職) | 직분을 맡김. 목사, 장로, 집사, 권사를 세우는 예식을 임직식이라고 한다. |
| 개 교회 | 노회나 총회 같은 연합 조직과 구별하여 부르는, 지역의 교회 하나하나. |
| 전도사 |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 안수를 받기 전 교회에서 사역하는 교역자. |
설교에 인용된 찬송
"부름 받아 나선 이 몸"은 새찬송가 323장(통일찬송가 355장)이다. 임직식과 파송 예배에서 자주 부르며, 3절에 "이름 없이 빛도 없이 감사하며 섬기리다"라는 가사가 있다.
쟁기질과 소
우리 농촌에서 소를 몰 때 "이랴"는 가라는 소리, "워"는 멈추라는 소리다. 설교에서 이사야 1:3을 설명하며 든 장면이다.
지하교회
기독교 신앙이 법으로 금지되거나 심하게 제한된 나라에서 드러나지 않게 모이는 교회를 가리키는 말이다.
7-5. 신학 용어
| 용어 | 풀이 |
|---|---|
| 벨리알 | 히브리어 '벨리야알'. '쓸모없음, 무가치함, 악함'을 뜻하는 말이며 "벨리알의 아들들"은 불량배, 못된 자를 가리키는 관용 표현이다(삿 19:22, 삼상 25:17). 개역개정이 "행실이 나빠"로 옮긴 이유다. 신약 시대에 이르러 이 말은 사탄을 가리키는 이름으로 쓰였다.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고후 6:15). 설교에서 "마귀의 자식"이라고 풀이하신 배경이다. |
| 하나님을 안다 | 히브리어 '야다'. 정보를 아는 것이 아니라 관계 안에서 겪어 알고 그분을 인정하며 따르는 것을 뜻한다.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호 6:3),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호 6:6),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 17:3). 설교 제목 "하나님을 알아감"의 뜻이다. |
| 멸시(蔑視) | 업신여기고 하찮게 봄. 하나님의 사람이 엘리에게 전한 말씀에 같은 주제가 이어진다.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삼상 2:30). |
| 제사 | 구약에서 하나님이 정하신 방식대로 제물을 드려 하나님께 나아가는 예배. 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가 있다(레 1-7장). |
| 번제(燔祭) | 제물 전체를 제단에서 불살라 드리는 제사. |
| 향기로운 제물 | 제단에서 태워 올리는 제물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신다는 뜻의 표현.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레 1:9, 3:5). |
| 받으실 만한 예배 |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 12:1).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요 4:24). |
| 헌상(獻上) | 하나님께 바쳐 올림. 헌금을 가리키는 말로 쓰셨다. |
| 회개(悔改) | 죄를 뉘우치고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것. 뉘우침에 그치지 않고 방향을 바꾸는 것까지 포함한다. |
| 겸비(謙卑) | 스스로 낮추는 것. 대하 7:14의 "스스로 낮추고"가 이 말이다. |
| 그루터기 | 나무를 베고 남은 밑동. 이사야는 심판 뒤에도 하나님이 남겨 두시는 사람들을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사 6:13)고 표현했다. 이렇게 남겨 두신 사람들을 '남은 자'라고 한다. |
| 들포도 | 이사야 5:1-7 '포도원의 노래'에 나오는 말. 주인이 기름진 산에 포도원을 만들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어 정성껏 가꾸었으나 먹을 수 없는 들포도가 맺혔다. "내가 내 포도원을 위하여 행한 것 외에 무엇을 더할 것이 있으랴"(사 5:4). 포도원은 이스라엘, 좋은 포도는 정의와 공의다(사 5:7). |
| 하나님의 나라 | 하나님이 왕으로 다스리시는 것. 예수님의 첫 선포가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 1:15)였다.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마 21:43). |
| 열매 | 믿음이 삶으로 드러난 결과.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은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는 것이라"(요 15:8). |
| 지체(肢體) | 몸의 각 부분.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교인 한 사람 한 사람을 그 몸의 지체로 표현한다(고전 12:27). |
| 직분자 | 교회에서 직분을 받은 사람. 목사, 장로, 집사, 권사 등. |
| 은혜의 방편 |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실 때 쓰시는 수단. 설교에서는 코로나19의 시기를 하나님이 우리를 돌이키시려고 쓰시는 도구라는 뜻으로 말씀하셨다. |
| 중보 기도 | 다른 사람을 위해 드리는 기도. |
| 골방 |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마 6:6). |
| 모태신앙 | 믿는 부모에게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교회에서 자란 것. |
| 큐티(QT) | Quiet Time. 날마다 정한 시간에 성경을 읽고 묵상하며 기도하는 경건 생활. |
| "천하의 범사에 기한이 있고" | 마무리 기도에 인용된 말씀.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전 3:1-2). |
8. 정리하며 확인할 점
- 2020년 영상이라 자동 자막의 품질이 낮습니다. 일부 표현과 고유명사는 성경 본문과 문맥에 맞추어 바로잡았으므로 설교자의 표현과 미세하게 다를 수 있습니다.
- 2~4장과 6장(설교 흐름·결론·기도 제목·설교 내용 정리)은 설교에서 실제로 말씀하신 내용만 담았고, 7장 '참고자료'는 이해를 돕기 위해 덧붙인 배경 설명입니다.
- 자막만으로 확실하지 않아 문맥으로 정리한 곳은 다음과 같습니다.
- "이란의 지하교회": 자막에는 '일 안에 있는 지하교회'로 들림. 이란으로 보았으나 확실하지 않습니다. 목사님이 신청해 기다린다고 하신 책의 제목은 자막으로 알 수 없습니다.
- "남미와 동남아의 교회": 자막에는 '남이나 동남아'로 들림.
- 어린아이의 기도 시간: 자막에는 '네 시간 아주 시간씩', '느드 실시간'으로 들려 정확한 숫자를 알 수 없어 "몇 시간씩"으로 적었습니다.
- "일 년에 500독", "천 독": 자막에는 '500도', '천도'로 들림. 성경 읽기 목표로 이해했으나 숫자와 앞뒤 표현이 정확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 "1905년 1907년 대부흥": 자막에 들린 연도 그대로 적었습니다. 일반적으로는 1903년 원산, 1907년 평양의 부흥을 꼽습니다.
- "사무엘을 통해서도 경고하신다": 자막에는 '사무엘의 기도를 통해서도'로 들림.
- 주중 성경 공부의 집사님 소개말("모태신앙으로 교회에서 자란")은 자막이 고르지 않아 문맥으로 정리했습니다.
- 결론 부분에서 중보 기도의 대상으로 교우 몇 분의 이름을 부르셨으나 이 노트에는 적지 않았습니다.
- 설교에서 인용하신 "아이 사무엘이 점점 자라매 여호와와 사람들에게 은총을 더욱 받더라"는 본문 범위 바로 뒤인 2장 26절입니다.
- 제사장의 몫(가슴과 다리)과 제사장이 일을 시작하는 나이(서른)는 설교에서 말씀하신 그대로 적었고, 성경의 관련 규정은 7-4에 덧붙였습니다.
- 참고자료의 연대(사사 시대, 성전 파괴 등)와 엘리의 계보는 학자에 따라 견해가 조금씩 다릅니다.